미국·이란 전쟁을 거치며 인공지능(AI) 생태계의 기반 시설인 데이터센터가 현대전에서 새로운 핵심 타격 목표로 부상했다.
3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가 표적으로 삼은 역내 기술시설 29곳의 명단에는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엔비디아, 팔란티어 등 미국 주요 IT 기업들의 인프라가 대거 포함됐다.
교전 기간 동안 양국이 타격한 데이터센터는 최소 5곳에 달한다. 이란은 걸프 지역에 자리 잡은 미국 동맹국 소유 데이터센터 4곳을 노렸고, 그중 바레인에 구축된 아마존 데이터센터는 4월 30일과 7월 21일 연달아 피격됐다. 미국 또한 이란 측 데이터센터 1곳에 보복 타격을 가했다.
CNN은 과거부터 사이버 해킹의 주요 표적이던 데이터센터가 물리적 파괴의 직접적 대상이 된 사례는 올해가 처음이라고 짚었다. 표면적으로 민간 인프라로 분류되는 데이터센터가 전장으로 끌려든 이유는, AI 기술이 실제 군사 작전과 융합되면서 민(民)과 군(軍)의 경계가 사실상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이란은 아마존이 미국의 군사정보 수집 및 작전에 필수적인 클라우드 시스템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 해당 데이터센터 폭격을 정당화했다. 실제로 아마존을 비롯해 구글, MS, 오라클 등은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90억달러(약 12조4000억원) 규모의 '합동 전투 클라우드 역량' 프로젝트에 협력사로 참여하고 있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정성이 다시 부각되면서, 풍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미국·중국에 이은 글로벌 'AI 허브'를 꿈꾸던 중동 국가들의 경제 안보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총 1조달러(약 1경3800조원)에 이르는 국부펀드 자금 중 상당 비중을 AI 산업 육성에 투입 중이다. 아랍에미리트(UAE)는 미국 정부와 손잡고 미국 본토 외 지역 기준 역대 최대 규모인 5000억달러(약 690조원)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구축 사업 '스타게이트'를 추진하고 있다.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 사우디, UAE 등 걸프 연안국들이 미국과 합의한 AI 관련 투자 프로젝트 총액은 2조달러(약 2760조원) 수준이다.
RBC 캐피털마켓의 헬리마 크로프트 글로벌 전략 책임자는 친미 노선을 걷는 걸프 국가들의 AI 인프라가 이란의 타격권에 들어갔음을 지적하며 "이러한 물리적 도발과 포괄적 위협은 해당 지역이 AI 혁신 및 자본 유치의 핵심 거점으로 발돋움하려는 청사진에 심각한 신뢰성 타격을 입혔다"고 평가했다.
데이터센터가 군사적 파괴 공작의 표적으로 떠오르면서, 인프라를 건립하려는 기업과 이를 자국에 유치하려는 각국 정부는 이전에는 없던 안보 변수까지 떠안게 됐다. 기존에는 화재나 자연재해 시 시스템 마비를 막기 위한 분산 운영 방식의 중복성 설계에 그쳤다면, 앞으로는 무력 공격에 의한 파괴 가능성까지 설계 단계부터 반영해야 하는 상황이다. CNN은 아무리 기대 수익이 크더라도 물리적 자산 보호가 취약하다고 판단되는 국가에서는 신규 데이터센터 건립 계획이 원점에서 재검토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데이터센터가 전장의 표적이 되면서 파생된 여파는 보험 업계로도 번지고 있다. CNN은 데이터센터를 대상으로 한 보험료가 급등하고 있다며, 보험 가입 자체가 가능하면 그나마 다행인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보험사 MSIG의 필립 레이 재산보험 책임자는 현재의 AI 데이터센터를 두고 '천문학적 가격의 장비들이 쌓여 있는 초대형 창고'에 불과하다며 취약성을 꼬집었다. 보험중개사 마시의 조 메이세잭 미국 디지털 인프라 담당 책임자는 "이번 분쟁을 지켜본 일부 고객사들은 중동 내 프로젝트 지속 여부를 심각하게 재고하고 있다"며 "다수의 보험사 역시 지정학적 리스크가 얽힌 특정 위험 인수를 극도로 기피하는 추세"라고 업계 동향을 전했다.
